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자전거 타고 건너다 차에 치였다면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장면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좌우를 살피며 그냥 건너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이 상황에서 차에 치였을 때, 보험사 담당자는 이런 말을 꺼냅니다.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넌 피해자 과실도 상당합니다.”
억울한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빠르게 오는 차를 미처 보지 못한 건데, 왜 내 잘못이 된다는 건지. 그런데 이 말에는 실제 법적 근거가 있습니다. 동시에, 그 과실이 어느 정도인지는 사고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왜 과실이 생기는가
도로교통법 제13조의2 제6항은 이렇게 규정합니다.
자전거등의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이용하여 도로를 횡단할 때에는 자전거등에서 내려서 자전거등을 끌거나 들고 보행하여야 한다.
이 조항은 신호등 유무와 상관없이 적용됩니다. 횡단보도라면 어디서든 자전거는 내려서 끌고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어기면 도로교통법상 보행자로 보호받지 못하고, 사고 발생 시 과실 산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과실이 생긴다고 해서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과실비율에 따라 차량측 책임이 얼마나 인정되느냐의 문제입니다. 최근 판결들을 보면 이 비율이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사안에 따라 꽤 다르게 나옵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자전거 사고,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나
우회전 차량 vs 자전거 — 차량 70%, 자전거 30%
수원지방법원 2025. 4. 2. 선고 2023나91869 판결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던 택시가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로 진입한 자전거를 충격한 사건입니다. 법원은 택시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지나는 자전거를 살피지 못한 채 운행한 과실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자전거 운전자도 자전거에서 내려 좌우를 살피며 차량 통행 여부를 확인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고, 해당 교차로에 시야 사각지대가 존재했던 환경적 사정 등을 함께 고려했습니다. 차량 70% : 자전거 30%

좌회전 차량 vs 자전거 — 차량 70%, 자전거 30%
대구지방법원 2024. 5. 2. 선고 2023나318800 판결
좌회전하던 차량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통과 중인 자전거와 충돌한 사건입니다. 법원은 차량 운전자가 전방·좌우를 잘 살펴 운행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게을리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자전거 운전자가 안전 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점,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탄 채 횡단한 점을 과실로 참작했습니다. 차량 70% : 자전거 30%
두 판결 모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발생한 자전거 사고입니다. 차량이 우회전이든 좌회전이든, 자전거 운전자가 내리지 않고 횡단한 사실은 동일하게 30% 과실로 반영됐습니다. 그리고 차량 측에는 70% 책임이 인정됐습니다.
법원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차량 운전자는 횡단보도 앞에서 전방과 좌우를 살펴 통행자가 있는지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어도 차량측 책임은 면하기 어렵습니다.

보험사는 어떤 논리로 과실을 주장하는가
실무에서 보험사가 흔히 쓰는 방식이 있습니다. 자전거탑승 횡단이라는 사실 하나를 강조해서, 전체 과실구도를 유리하게 가져가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법적으로 자전거에서 내려야 했으니 피해자에게 큰 과실이 있다”는 식의 설명과 함께, 5:5 또는 4:6(피해자 불리)의 과실비율을 제시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그러나 위 판결들을 보면 법원이 인정한 비율은 7:3입니다.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은 사실이 과실로 반영되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 과실이 몇 %인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차량 운전자의 주의의무 위반 정도, 사각지대 여부, 안전장구 착용여부, 신호위반 여부 등 여러 요소가 함께 반영됩니다.

과실비율 외에 실제 보상에서 차이가 생기는 지점
✔치료비·휴업손해·위자료의 기준은 따로 있다
과실비율이 결정되면 손해액에서 그 비율만큼 공제됩니다. 그런데 공제되기 전의 손해액 자체가 얼마로 산정되느냐에 따라 최종 금액이 크게 달라집니다.
자전거 사고에서 흔히 발생하는 부상은 “골절, 인대손상, 타박상”입니다. 이 중 골절과 인대손상은 향후 치료 필요성이나 노동능력 감소여부가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단서와 영상소견의 표현 방식, 치료경과 기록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에 따라 인정 여부가 갈립니다.
위자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상의 경중, 치료기간, 일상생활제한 정도가 자료로 뒷받침될 때 더 명확하게 반영됩니다. 이 부분은 사고 직후부터 기록이 어떻게 쌓이는지가 나중 보상 결과에 직결됩니다.
✔안전장구 착용여부가 과실에 영향을 준다
대구지방법원 2024. 5. 2. 판결(2023나318800)에서는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점도 과실사유로 명시적으로 언급되었습니다. 자전거 사고라면 헬멧착용 여부가 과실산정 시 하나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법적 강제는 성인의 경우 현재 일반도로에서 의무 사항은 아닙니다. 그러나 법원이 과실을 따질 때 이 사실을 참작한 판례가 있으므로, 실무에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요소입니다.

이 3가지 먼저 확인해 보세요
사고 이후 스스로 점검할 항목
- 사고 당시 내가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에 진입한 사실이 CCTV나 블랙박스 영상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가. 보험사가 과실을 어떻게 주장하는지와 영상사실이 일치하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 현재 받고 있는 치료내용이 진단서·소견서상 부상 정도에 맞게 기재되어 있는가. 치료 기간이나 향후 치료 필요성이 누락되어 있다면 보상에서 빠질 수 있습니다.
- 보험사가 제시한 과실비율 근거가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는가. 자전거 탑승 횡단이라는 사실만으로 5:5나 4:6을 제시하고 있다면, 위 판결 기준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자전거 사고는 단순해 보여도 과실비율과 손해액 산정에서 실무적으로 다뤄야 할 지점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기록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에 따라, 같은 사고라도 결과가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