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침범사고, 보행자는 무조건 유리할까요?

보도를 걷다가 차량에 치였습니다. 누가 봐도 운전자 잘못인 상황인데, 보험사 담당자는 며칠 후 이렇게 말합니다.
“과실이 조금 있으셔서요, 그 부분 빼고 계산했습니다.”
황당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겁니다. 보도 위에 있었는데 내 과실이 있다는 말이 납득이 안 되죠. 그런데 실제 판결을 보면, 상황에 따라 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인정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기준이 어디서 갈리는지를 설명합니다.
보도침범사고, 12대 중과실에 들어갑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9호는 “도로교통법 제13조 제1항을 위반하여 보도가 설치된 도로의 보도를 침범하거나, 같은 법 제13조 제2항에 따른 보도 횡단방법을 위반하여 운전한 경우”를 12대 중과실 중 하나로 규정합니다.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가해 운전자에 대한 형사 절차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형사처벌 부분은 이 글에서 다루지 않고, 실제로 받을 수 있는 민사적인 보상 — 과실비율과 손해액 구조 — 에 집중합니다.
성립 요건: 침범 사실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보도침범사고가 성립하려면 두 가지가 함께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차량이 실제로 보도를 침범했을 것. 둘째, 그 침범 행위가 사고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을 것.
서울중앙지방법원 2014. 7. 25. 선고 2014고단945 판결
교차로에서 1차 충돌이 발생하고, 그 여파로 다른 차량이 보도를 침범해 보행자를 친 연쇄사고 사안입니다. 법원은 1차 사고를 유발한 운전자의 행위가 보도침범의 직접 원인이 되지 않았다고 보아, 보도침범 교통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이 민사 피해자 입장에서 갖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가해차량이 보도에 올라온 것은 맞지만, 왜 올라왔는지의 경위에 따라 과실 구조 자체를 다르게 판단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판결이 인정한 과실비율, 차이가 큽니다
피해자 과실이 0%인 경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1. 11. 선고 2023나8876 판결
음주운전 차량이 보도를 침범해 보행 중이던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고입니다. 피해자는 정상적으로 보도를 통행하고 있었고, 법원은 피해자측 과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위자료는 망인 본인에게 1억 2천만원, 직계가족(A·B)에게 각 1천만원, 그 외 유족(C·D)에게 각 500만원이 인정되었습니다.
정상적으로 보도를 걷고 있던 보행자에게 과실을 묻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판결은 그 기준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피해자 과실이 20%로 인정된 경우
광주지방법원 2025. 2. 12. 선고 2023가단561403 판결
피해자가 보도 위에 차량을 불법 주차하고 그 옆에 서 있던 상황에서, 피고 차량이 후진 중 보도를 침범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법원은 피해자가 도로교통법 제32조 제1호를 위반하여 보도에 주차한 과실이 있다고 보아 20%를 과실상계했습니다. 가해차량 측 과실은 80%였습니다.
“이 사건 사고는 피고의 중대한 과실로 발생하였으므로, 민법 제765조에 따른 책임감경은 불인정한다.”
(광주지방법원 2025. 2. 12. 선고 2023가단561403 판결)
피해자가 보도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과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보도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 행위가 도로교통법상 위반인지 여부가 과실상계의 기준이 됩니다.
피양운전 중 보도를 침범한 경우 — 가해자 과실 90%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4. 20. 선고 2016나51247 판결
중앙선을 침범한 피고 차량을 피하다가 원고 차량이 보도를 침범, 보행자를 충격한 사안입니다. 주된 과실은 중앙선 침범 차량에게 90%가 인정되었고, 보도를 침범한 원고 차량에는 제동장치를 적절히 조작하지 못한 과실로 10%가 인정되었습니다.
운전자가 “어쩔 수 없이 보도를 침범했다”는 논리를 내세울 때, 법원은 그 상황 자체보다 제동장치 조작, 속도, 예견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따집니다.

보험사가 사용하는 논리를 얘기합니다.
“충돌을 피하다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
실무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과실 다툼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7. 3. 선고 2024가단5019617 판결에서 법원은 이 논리를 명시적으로 차단했습니다.
“차도를 운행하는 차마의 운전자는 다른 차마에 우선하여 보도나 횡단보도에 있는 보행자를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다른 자동차와의 충돌이 예상된다는 이유만으로 보행자를 충격할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보도를 침범하여서는 아니 될 주의의무가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7. 3. 선고 2024가단5019617 판결)
운전자가 보도를 침범한 이유가 무엇이든, 보행자 보호의무는 그 이유보다 우선합니다. 이 판결에서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액은 782,945,324원 및 지연손해금으로 산정되었으며, 피해자 과실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보험사가 실제로 손해액에 개입하는 지점
민사 보상에서 보험사가 손해배상금액을 줄이는 구조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과실상계. 피해자에게 일정비율의 과실을 적용해 전체 손해액을 줄입니다. 위에서 본 광주지방법원 판결처럼 피해자가 보도에서 법규를 위반하고 있었다면 20%까지 인정될 수 있습니다.
둘째, 후유장해 부분. 치료가 종결된 후에도 남는 기능 저하나 통증에 대한 노동능력상실률 산정 과정에서 보험사와 피해자간 견해 차이가 큽니다. 검사기록, 진단서 표현, 치료경과 연속성이 이 구간을 결정합니다.
셋째, 일실수입 산정. 피해자의 소득기준과 가동연한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최종 배상액이 달라집니다. 기록에 소득근거가 없으면 보험사는 최소기준을 적용하려 합니다.

피해자가 실제로 확인해야 하는 3가지
✔ 사고 당시 나는 보도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정상 보행인지, 불법 주정차 차량 옆에 있었는지에 따라 과실 구조가 달라집니다.
✔ 가해차량의 침범경위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가.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근거는 블랙박스, 목격자 진술, 현장사진에 있습니다. 이 기록이 없으면 나중에 다투기 어렵습니다.
✔ 치료 종결 전에 합의 제안을 받고 있는가. 후유장해가 남을 수 있는 상태에서 서명한 합의서는 이후 추가청구를 원칙적으로 차단합니다. 진단서에 ‘경과관찰 필요’라는 표현이 남아 있다면, 그 의미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보도침범사고에서 피해자 과실이 0%인 경우와 20%인 경우의 실제 보상금 차이는, 손해 규모에 따라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벌어집니다.
지금 합의 제안을 받은 상태라면, 그 금액이 어떤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